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Knossos
    크레타-그리스 2013. 3. 30. 16:24



    크노소스는 이라클리오에서 5정도 거리에 있다.

     

    크노소스 궁전을 발굴했던 에번스의 기념비가 서 있고

     

    몇 그루의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는 입구를 지나면 곧장 크노소스 궁전의 유적이 펼쳐진다. 그것은 희고, 넓고, 상상보다 낮다. 중앙의 큰 마당을 중심으로 수백 개의 방들이 들어 앉아 있다. 방들은 크기도 방향도 높이도 같지 않고 계단은 반 층 높이로 오르내리며 시선은 열림과 막힘을 반복한다. 비록 마련된 길과 정해진 동선이 유적의 외피에 한정되어 있지만 평면도와 안내판의 도움을 받으면 다층의 복잡한 구조를 상상할 수 있다. 그것은 미로의 공간감을 느낄 수는 없지만 분명 전설속의 미궁이라고 믿고 싶어지는 상상이다.

     

    그리스로마신화와 호메로스의 대서사시인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유명한 크레타의 크노소스 궁전(기원전 1700~1400년경)은 서양 건축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미노스는 전설속의 왕이다.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바칠 황소를 가로챈다. 이에 격노한 포세이돈의 저주가 내린다. ‘왕의 아내 파시파에는 황소에게 주체할 수 없는 욕정을 느끼게 될지어다!’ 그리하여 반은 사람, 반은 황소인 미노타우로스가 태어난다.

     

    미노스 왕은 건축의 명장인 다이달로스에게 들어가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迷宮)을 짓게 하여 미노타우로스를 가둔다. 그리고 해마다 아테네에서 각 7명의 소년 소녀를 데리고 와 미궁의 괴물에게 산 채로 바쳤다.

    매년 크레타에 미소년과 미소녀 7쌍을 조공으로 바쳐야 했던 아테네에는 왕자 테세우스가 있었는데 그는 조공으로 바쳐질 이 남녀들 틈에 끼어 크레타로 건너간다.

     

    테세우스를 본 순간 크레타의 공주 아리아드네는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아버지인 미노스 왕 몰래 테세우스에게 검과 실타래를 주어 미로를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준다. 테세우스는 실타래를 잡고 미궁 속으로 들어가 괴물을 해치운 뒤 미리 기둥에 매어놓았던 실을 따라 무사히 탈출한다. 공주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가 자신을 데려가 주리라 생각했지만 테세우스는 잠든 아리아드네를 낙소스 섬에 내려놓고 떠나버린다. 잠에서 깨어나 사랑하는 이에게 버림받은 것을 알게 된 아리아드네는 슬피 울다가 주신(酒 神) 바쿠스(디오니소스)를 만나게 된다.

    테세우스에게 버림받은 아리아드네는 바쿠스를 만나 위안을 받고 그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다. 바쿠스에게 결혼 선물로 왕관을 받았던 아리아드네가 후에 죽자 바쿠스는 그녀가 쓰던 왕관을 하늘의 별자리로 올려주었다.

    한편 공주가 왕자와 함께 도망가 버리자 화가 난 미노스 왕은 미로를 설계한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를 미로 속에 가두어 버렸다. 그러나 다이달로스는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의 자손이었다. 조상으로부터 틀림없이 훌륭한 기술자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그는 이 미로를 빠져나갈 멋진 도구를 만들어낸다. 바로 새들이 떨어뜨린 깃털을 모아 밀랍으로 자신과 아들 이카로스의 어깨에 붙여 날개를 만든 것이었다.

     

    이렇게 미로를 빠져나온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는 아들 이카로스에게 충고했다.

    미궁의 건축가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날개를 달고 날아올랐다.

    태양 가까이 가면 안 된다. 그럼 날개가 녹아버릴 거야.” 그러나 젊은 아들 이카로스에게 처음 날아본 하늘은 마법과도 같은 것이었다. 환하게 빛나는 태양을 만져보고 싶어 자꾸만 위로 날아올라갔던 그는 결국 아버지의 말대로 뜨거운 태양에 밀랍이 녹아 바다로 떨어지고 만다.

     

    더 높이 날고자 했던 이카루스는 결국 추락했다.

     

    20세기 초, 영국의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는 크노소스 궁전을 발굴하면서 이곳이 미노스 왕의 미궁이라 비정했고, 크레타 섬의 고대 청동기 시대를 미노스(미노아)문명이라 명명했다.

    그러니까 수천 년 전의 미노스인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칭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에번스는 크노소스를 통째로 사들여 35년간 발굴하면서 동시에 거액을 들여 대담한 복원을 시도했다. 그것은 학문적이고, 조직적이고, 면밀한 것이었지만 또한 상상력과 콘크리트가 포함된 것이었다. 그의 손길은 너무 선명해서 고고학자이자 건설가라는 비난이 수긍된다.

    그러나 세계대전과 지진에도 크노소스가 살아남은 것은 건설가 에번스 덕이다.

    20세기의 미궁을 구현코자 했던 에번스는 비난 속에 있다. 자유와 욕망은 결과적으로 적대적인 것일까.

     

    강렬한 색상과 역동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크노소스의 프레스코화. 유적지의 것은 모사품이며 진품은 이라클리오 고고학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20810.010340821560001

     

    http://magazine.hankyung.com/money/apps/news?popup=0&nid=02&c1=2004&nkey=2011103100078102822&mode=sub_view


    Knossos Crete - The palace of Knossos 


     the great ancient Minoan palace was built gradually between 1700 and 1400 BC, with periodic rebuildings after destruction. 







    Minoan Art at Knossos



    '크레타-그리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Chania  (0) 2013.03.30
    Gortys or Gortyn or Gortyna  (0) 2013.03.30
    Zaros  (0) 2013.03.30
    Heraklion, Iraklio, Crete  (0) 2013.03.30
    그리스의 크레타섬(Crete Island)  (0) 2013.03.30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