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로마--판테온(The Pantheon)

qlstnfp 2013. 1. 29. 19:38


판테온(라틴어: Pantheon)은 그리스어 ‘판테이온(Πάνθειον)’에서 유래한 말로, “모든 을 위한 신전”이라는 뜻이다.

고대 로마의 신들에게 바치는 신전으로 사용하려고 지은 로마의 건축물




악티움 해전(기원전 31년) 이후, 아그리파는 그의 집정관의 세 번째 임기 중에 원래의 판테온을 건립하고 이를 신에게 봉헌하였다(기원전 27년). 아그리파의 판테온은 서기 80년에 로마에 일어난 대화재 때문에 다른 건물과 함께 불타 없어졌다. 


지금 있는 건물은 서기 125년경에 하드리아누스 황제 재위 중에 세워진 것이다. 


원래 있던 명문(“M·AGRIPPA·L·F·COS·TERTIVM·FECIT”. Marcus Agrippa, Lucii filius, consul tertium fecit를 의미하며, “'루시우스의 아들인 마르쿠스 아그리파가 세 번째 집정관 임기에 만들었다.”라는 뜻이다.)이 새로운 건물의 정면(파사드)에 덧붙여졌으며, 하드리아누스가 계획한 로마 전역에 걸친 재건 계획의 일부로 이 건물은 완전히 재건되었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카라칼라 황제에 의해 서기 202년에 보수되었고,


교황 보니파시오 4세는 이 건물을 산타 마리아 아드 마르티레스(Santa Maria ad Martyres)라는 이름의 성당으로 개축한 다음 축성(祝聖)하였다(현재는 산타 마리아 데이 마르티리Santa Maria dei Martiri로 개명).

판테온은 기독교 성당으로 개축된 덕분에 상당수의 고대 로마의 건물들이 중세 초기에 겪은 파괴와 약탈 등을 겪지 않을 수 있었다. 


수 세기 동안 건물의 외부를 장식하던 양질의 대리석들이 없어져 버렸으며, 심지어 이 건물의 벽에 붙어 있던 기둥의 머리부분은 대영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판테온의 두 기둥은 건물의 동쪽에 접한 중세 건물들 때문에 잘려나가 없어져 버렸다. 17세기 초반교황 우르바노 8세는 현관의 청동 천장을 벗겨 내고 중세풍의 종탑을 카를로 마데르노가 설계한 (19세기 후반에 없어진) 쌍둥이 탑으로 교체했다.


르네상스 시대 이래로 판테온은 무덤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에 묻힌 사람들 가운데는 화가 라파엘로 안니발 카라치, 작곡가 아르칸젤로 코렐리, 건축가 발다사레 페루치 등이 있다. 

 이탈리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움베르토 1세 두 왕이 묻혀 있으며, 움베르토의 배우자인 마르게리타 왕비 역시 이곳에 묻혀 있다.

판테온은 아직도 가톨릭교회의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미사가 집전되고 있는데, 특히 중요한 축일이나 결혼식 등에 행해진다.






The Pantheon